절에서 재(齋)를 올리 때 부르는 장단·화성이 없는 단선율의 노래이며, 이 음악을 반주로 추는 춤은 작법(作法)이라고 한다. 범패는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인도(印度) 소리 등으로 불려지는데, 불교음악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역사 범패는 처음 인도에서 발생, 불교에서 주로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그 기원을 불교 발생이전의 바라문교에 두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삼국유사』권5 월명사 도솔가조의 기록이나 신라 현덕왕 때 진감선사(眞鑑禪師)의 대공탑비문 등을 통해서 이미 8-9세기경 범패가 불러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당풍·향풍(신라풍)·고풍(당 이전의 범패) 등 음악의 형태가 다른 세 종류의 범패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조선을 거쳐 전승되었으며, 1911년 6월 일제에 의해 사찰령이 ..
문묘제례악은 공자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우리나라의 유학자 설총, 최치원, 정포은, 이율곡, 이퇴계 등 명현 16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제사할 때 행하는 악․가․무 일체를 말하며 이를 ‘문묘악’이라 줄여서 부르기도 하고 ‘석전제악’이라고도 하며 영신례 절차의 악명인 ‘응안지악(凝安之樂)’을 문묘악의 일반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역사 문묘제례악은 본래 중국 상고시대에 기원을 둔 음악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 11년(1116년)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門公美)가 돌아오면서 송나라의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들여오면서 시작되었고, 이후에 원구(원丘)·사직(社稷)·태묘(太廟)·문묘(文廟) 등의 제향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전하는 문묘제례악은 조선..
종묘와 영녕전 두 사당의 제사에 사용되는 기악과 노래(악장:樂章)와 무용(일무:佾舞)을 말하며, 줄여서 종묘악(宗廟樂)이라고도 한다. 종묘는 조선 역대에 공이 큰 임금 29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영녕전은 단명을 했거나 공이 없는 임금과 태조 이성계의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등 15분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역사 현재 전하는 종묘제례악은 세종대왕(1418-1450)이 연회음악으로 만든 보태평과 정대업을 세조10년(1464)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한 것이다. 정대업(定大業)과 보태평(保太平)은 세종28년(1446)에 세종대왕이 직접 당시의 향악과 고취악에 기초하여 정대업 15궁 남여궁계면조와 보태평 11곡 임종궁평조로 창제하였으나 세조 이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면서 정대업 11곡, 보태평 11..
노래·춤·기악의 종합예술형태로 전하는 우리 전통음악은 종교의식과 관련된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삼한시대부터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에 쓰인 음악, 삼국시대에 들어온 불교의식인 범패, 원구(하늘)·사직(땅)·종묘(조선왕가)·선농(곡식)·선잠(누에)·문성왕묘(공자) 등 유교 사회에서 여러 신에게 올리는 온갖 형태의 제의에 쓰였던 음악,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마을단위의 굿에 쓰인 것이었기에 의식과 함께 그 음악은 꽤 오랜동안 가·무·악 종합예술형태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에는 여러 의식이 그 기능을 잃으면서 음악의 형태도 자연히 기악이나 성악, 춤 등으로 분리되어 형태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생활음악이나 의식음악보다 감상음악으로 바뀌고 있다. 현존하는 전통음악 중에는 종묘제례악, 문묘제레악..
어떤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그 민족이 살아온 삶의 모습과 과정이 노래의 형태로 나타나 정착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요에는 민중이나 생활 공동체의 미적 심성과 정서가 담겨있기 마련이고 자연발생적 성격을 지닌다. 또한 일정한 규범이나 악보가 없이 전승되는 음악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모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민요가 어느 정도 파급되었는가에 따라 통속민요와 토속민요로 나누기도 하고 어느 지역의 특성을 가졌는가에 따라 경기민요·남도민요·동부민요·서도민요·제주민요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민요에 쓰이는 장단은 불균등하거나 균등한 장단이 반복되는 형태와 일정한 장단이 없으면서 박자가 들쭉날쭉한 무패턴 불규칙형, 즉 불규칙 형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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