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류(竹風流)는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하는 풍류음악이라는 뜻으로, 취타부터 시작하여 별곡타령으로 끝나는 '취타풍류'와 긴염불로 시작하여 끝나는 '염불풍류'가 현재 연주되고 있다. 취타풍류는 취타, 길군악, 길타령, 삼현타령, 별곡타령으로 짜여져있고 염불풍류는 긴염불(염불타령), 반염불, 삼현타령(1장), 느린 허튼타령, 중 허튼타령, 자진 허튼타령, 굿거리, 자진굿거리, 당악(휘모리)으로 짜여져 있다. 이 중 염불풍류는 지영희에 의해 전해진 경기, 서울지방의 무용(승무, 검무 등) 및 탈춤, 굿 등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어 온 음악의 모음으로 긴염불, 반염불, 굿거리, 자진굿거리 등은 승무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되며 허튼타령은 탈춤에, 당악은 경기굿에서 사용된다. 각 곡은 모두 반복구조로..
불교의 성악곡이 기악화한 곡으로 모두 9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에는 이런 모음곡으로 틀을 갖춘 하나의 곡이 다시 악기편성, 악곡구성, 음악의 쓰임, 선율형태 등을 달리하면서 다른 파생곡이 생기게 되었다. 유래 영산회상은 불교음악이 세속음악으로 변화한 음악이다. 15세기의 음악을 기록한『대악후보』와 1493년에 만들어진『악학궤범』에 기록된 영산회상은 처음에는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彿菩薩)'이라는 불교가사를 관현악 반주로 노래하던 불교음악이었으며, 또한 향악정재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이와같이 본래 불교의 성악곡이던 영산회상이 중종(1506-1544)때 이르면 불교가사가 '사만년사'로 개작되고 세속화하기 시작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가사는 없어지고 순 기악곡으로 변화한다. 그 예로..
이름 그대로 불(吹)고 치(打)는 형태의 음악으로 관악기(吹:취악기)와 타악기(打)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다.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군에 쓰였으며, 행악과 관련된 모든 음악을 포함하는 개념이면서 한 악곡의 명칭이기도 하다. 유래 취타는 취악기와 타악기의 음악으로 행차 및 행군과 관련이 있는 음악이며 대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등이 모두 취타 계열의 음악에 속한다. 현재 연주되는 대취타는 원형은 원래 조선시대 궁중의 선전관청과 각 영문에 속해 있으면서 임금이 성문 밖으로 행차할 때나 능에 행차할 때 또는 군대의 행진이나 개선때 연주하던 취타대의 음악에서 찾을 수 있다. 행렬앞에 위치한 악대를 전부고취(前部鼓吹), 행렬뒤에 위치한 악대를 후부고취(後部鼓吹)라 부르며 전부고취의 악사들을 취고수..
유래 고려시대에 송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악(詞樂)의 하나로서, 다른 이름으로는 기수영창지곡(其壽永昌之曲), 하운봉이라 하며, 당피리 중심의 관악합주곡이다. 원래는『고려사악지』 당악조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실려 있었다. 미전사 : 사창 아직 밝지 않았는데, 꾀꼬리 소리 울려온다. 혜초 향로에 남은 심지 다 타버렸네, 비단 병풍 깁 방장으로 봄 추위 막았는데 간밤의 삼경에 비가 내렸다. 미후사 : 수놓은 발에 한가히 기대어 나르는 버들 가지를 본다. 눈살 찌프리고 마음 갈피 못 잡아, 꽃 꺾어 눈물 짓고 돌아오는 큰 기러기 향해서, 떠나온 곳에서 내 낭군 만나 보았소 하고 물어 보았네. 이 가사는 송대의 명필 구양수가 지은 '낙양춘'이라는 시를 한역한 것으로 멀리 떠나간 낭군을 그리워 하는 노래이다...
유래 원래의 보허자는 고려 때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 송나라 사악(詞樂)의 하나로서 낙양춘과 함께『고려사악지』에 전하며, 오양선(五羊仙)이라는 정재에서 창사(唱詞)로 부르던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는 유선의 황홀감을 묘사한 뒤 이어 대궐을 향하여 송축하여 태평시절의 즐거움과 임금의 장생불로를 축원하는 내용으로 이 가사는 미전사(尾前詞:전단)와 미후사(尾後詞:후단)로 나누어지고, 첫귀 가락만 제외하고는 미후사의 가락이 미전사의 가락을 반복한다. 이렇게 첫귀 가락을 바꾸었다고 하여 환두(換頭)가락이라고 하고, 둘째 귀 이하의 가락은 그대로 반복한다고 하여 환입(還入)가락이라고 한다. 노래의 가사를 미전사와 미후사로 나누어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전사 : 푸른안개 새벽 하늘에 자욱한데, 바다 물결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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