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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작곡가 소개

황병기

나무그늘 2010. 5. 27. 12:20
황병기(黃秉冀)는 193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재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교 졸업하였다. 중학교 시절인 1951년부터 국립국악원에서 김영윤에게 정악을, 김윤덕·심상건에게 산조를 배우기 시작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가야금으로 전국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천부적 재질을 타고났다. 그가 정악과 산조를 가야금으로 익히던 시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국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때인데, 이러한 시기에 중학생의 어린 나이로 국악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야금을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에서 그의 선견적 안목과 깊은 사려, 그리고 국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찾을 수 있다.

그가 가야금을 배운 것은 전통적 도제식 교육의 결과로 보상되는 열매를 따먹겠다는 단순한 이윤을 기대한 의지가 아니다. 누구에게 배웠으니 누구의 제자로서 장차 무형 문화재라도 차지해 보겠다는 얄팍한 상혼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의 탁월한 지성과 감성은 이러한 것에 연연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원대한 꿈, 예술가로서 성장하도록 인도하였다. 그래서 그는 가야금을 배우면서도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원리와 이론을 캐묻고 국악 전반에 관한 지식을 섭취하는 계기를 가졌다.

국립국악원에서의 가야금 공부는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예술가의 훈련과정이며 이 과정을 통해 훗날 작곡의 길을 홀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홀로 작곡의 길을 걸었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이전에 하지 못했던 가야금 독주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선지로 기보한 최초의 독주곡 작곡자이며 동시에 가야금 독주곡의 양식을 제시한 첫 작곡가이다. 가야금의 성능과 표현력, 기능과 예술성 표출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는 터에 가야금 곡의 양식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작곡가였다.

또 하나는, 그가 작곡 훈련이나 창작 학습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할 만큼 수준 높은 가야금 독주곡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의 예술작품 생산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구와 더불어 논의하지도 않은, 스스로 터득한 황병기 어법에 의해서 형성된 바다. 황병기 어법은 1962년의 <숲>으로부터 <가을>, <석류집>, <봄>, <침향무>, <비단길>, <영목>, <전설>, <밤의 소리>, <남도환상곡>과 1991년의 <춘설>에 이르기까지 12곡에 일관되게 침재하여 그의 개성적 양식을 이룬다.

그가 사용한 가야금 기법은 동질적 요소와 유사적 요소의 배합에 있다. 동질적 요소란 전통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서 정악과 산조의 수법과 흐름을 말하고, 유사적 요소란 정악과 산조의 동일한 성격의 창의적인 것과 또 우리 감정이 쉽게 수용할 만한 아시아적 수법을 말한다. 이러한 그의 가야금 기법은 감상자에게 새로운 음악이 주는 생소함이나 거부감 없이 전통음악의 어느 한 양식의 음악을 듣는 듯한 친숙감을 제공한다. 또 가야금 기법을 구사함에 있어서도 억지가 전혀 게재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덕지덕지 개칠하지 않은 경제적이며 효과적인 음들을 연결한다. 말하자면 음 하나 하나가 시김새를 갖거나 탄법을 달리하는 음들로서 소리에 생명을 부여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야금곡이 표출하는 미적 범주는 곱고 정갈하며 투명하다.


이 내용은 서울대 이성천 교수님의 '현대국악 감상'에서 발췌 하고,
곡의 목록은 《한국음악 창작곡 작품목록집》을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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