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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 작곡가 소개

이상규

나무그늘 2010. 5. 27. 12:17
이상규(李相奎)는 1944년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 6년 과정의 국악사 양성소에서 대금을 전공하였다. 국악사 양성소는 국악연주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특수교육기관으로 1955년 설립되었으며, 국악과 서양음악 및 일반 학과목이 그 교육과정이었다.

이상규는 국악사양성소에서 국악에 대한 기초훈련을 쌓았고 당시 작곡가와 지휘자가 거의 없었던 시기에 작곡과 지휘로 활동하면서 국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의 세계를 확장하여 갔다. 그러나 국악의 지식과 경험은 그로 하여금 음악이라는 더 넓은 예술세계로 내몰게 되었고, 결국 동년배보다 늦게 한양대학교 국악과에 입학, 작곡을 전공하였다. 그의 처녀작인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기 전인 1962년의 관현악 <하늘의 꿈>과 작곡을 전공한 후의 작품은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판이하게 다르다. 결국 오늘날의 이상규와 그의 작품은 대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상규는 1960년대, 그러니까 국악작곡이라는 새로운 낱말로 시작하던 활동 초기부터 곡을 써 창작 목록을 만들어갔다. 그가 받은 교육과 훈련은 궁중음악과 정악분야였으나 그의 창작열의는 민속악을 연마하게 하였으며, 그의 지식과 경험은 작품에서 감성적 표현으로 심화되었다. 그의 국악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작품에서 감성적 표현으로 심화되었다. 그의 국악에 대한 인식과 경험은 종묘와 문묘제례악 처용무를 비롯한 궁중무 가곡·가사·시조·민요에 이르기까지 6년간의 국악사양성소 교육에서 획득된 것이다. 이 지식과 경험이 창작과 지휘에서 체험되었으며 대학교육이 그의 활동으로 하여금 이성적 관여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작곡은 작곡가에게 내재한 감정을 하나의 악곡 속에 짜 넣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전적으로 이성적 관여에 의해 성립되는데, 이것을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작곡자가 주장하려는 메시지와 표현하려는 감정의 알맹이가 혼란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적 관여는 구성·구조·틀·짜임새 등 예술작품으로서의 모습 만들기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상규는 중등교육에서 얻은 감성의 세계로서 작곡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고등교육에서 받은 이성의 인식으로서 작품의 길을 닦았다고 풀이된다. 그의 넓은 감성의 세계는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무용음악과 연극음악, 그리고 TV음악 등 실용음악에까지 음악의 영역을 넓혀다. 또한 80여 곡에 이른 연주용 음악을 작곡 발표하여 창작음악이 급격히 요구되던 시기에 음악의 영역 확장을 위해서, 국악의 일반화를 위해 기여한 바가 크가. 그의 연주용 음악의 성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971년의 <자진한잎> 같이 정악을 소재로 한 작품과, 1972년의 <16개의 타악기를 위한 시나위>처럼 민속악을 바탕으로 한 것, 그리고 1977년의 <석인 2>와 같이 자신의 자유로운 작품으로 작곡한 것 등이다. 정악과 민속악을 소재로 한 작품에는 편곡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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